2020.09 _ Epilogue
Concrete Library_ Renovation project J222-57 (Jan2018 - Jan2020)
#
콘크리트 도서관을 가볍게나마 소개하기까지 완공을하고, 준공사진을 찍고, 마침내 함께 결정한 제목의 대문사인을 걸고나서도 반년이 훌쩍 넘어 걸렸다. 바쁘다고 미룬 핑계도 없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과 노고를 기울인 이 작업이 완성 된 뒤에, 뒤늦은 열병 같은 것이 몰려왔다. 한동안은 거리를 두어야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0미터 길이의 좁은 골목길(도로로 인정 안되는)끝에 앉은 땅, 30년 연식의 벽돌조 건물,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침하가 진행중인 지반, 현행법규상 신축이 불가한 사실상 맹지, 골목에 더해 사면을 빼곡히 둘러싼 인접대지들- 의 조건에서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수용하며, 미래를 위한 근본적인 재생을 고안하는 것, 시간과 비용, 의미있는 건축계획의 접근, 시작 전부터 협력에 거절과 난색을 표하는 각 전문분야 사람들 및 행정관계자들을 설득_ 등이 이 같은 대지의 존재와 동시에 직면하게되는 현재의 숙제다.
‘콘크리트 도서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맥은_ 60-80년대 가장 보편적 방식으로 지어져 노후화된 '시멘트 조적건물'에 접근하는방향에 있어, 소규모 연와조 건물에서 적용하기 마련인 최소한의 접근, 철골보강 + 외장타일교체 의 건식방식이 아닌 ‘콘크리트-습식방식’ 으로 방향을 결정하고, 그 콘크리트라는 구축 물성 자체로만 온전히 구조, 외관, 공간구성, 재료, 질감, 스토리를 모두 한 꿰로 뚫어내어 일관하고자 계획한 것에 있다.
여기에 관해 ‘콘크리트 도서관' 프로젝트의 차별성과 존재의미는 여러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음에도 단호했던 판단과 동시에, 이 방향과 생각이 옳음을 밝히고 건축주의 합의를 끌어낸 계획초기에 99가 결정되었다- 라고 아지트 내부에서는 치켜세워주듯 말하기도 하지만, 나머지 몫이 1이라기엔 한 줄기 식은땀이 흘를 것 같다.
신설 콘크리트는 30년 연식의 기존건물을 기초부터 다시 감싸 안아 재구축한다. 즉 ‘옛 조적 벽체’는 ‘신설 콘크리트 벽체’의 거푸집으로서 역할하는 것이다. 합벽으로 합쳐져 깊은 볼륨과 그림자를 만드는 물리적 합벽의 두께는 앞선 30년 시간의 두께다. 한편, 합치는 대신 서로 다른 시간이 마주보듯, 거리를 두고 존재하는 ‘옛 조적벽체’ 와 ‘신설 콘크리트 벽체’ 관계는 완충과 새로운 공간을 형성한다. ‘콘크리트 도서관’은 옛 벽과 신설 구체의 거리와 관계로부터 정의된다. 옛 시간과 새로운 시간이 구분되어 인지될 수 있도록 옛 벽체의 외부는 붉은색으로 칠해졌다.
신축불가한 노후 연와조건물을 적극적이고 영속적인 방향으로 리노베이션 했던 이 작업에서 ‘콘크리트’는 구축적 해법과 논리로서는 물론이고, 기초 및 골조에서부터 담장, 건축물의 외벽, 내`외부 바닥, 내부 공간, 가구에 까지 일관되게 적용된 주제이자 구법이다. ‘콘크리트 도서관’ 전체에서 콘크리트의 물성적 혹은 질감적 변주를 찾을 수 있는데, 때로는 이 변주가 프로그램을 구분하기도 하고, 아주 직접적인 촉감으로 다가오는 접촉 환경을 구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콘크리트 도서관’ 프로젝트를 ‘콘크리트 텍토닉(Concrete Tectonic)’이라고도 표현한다.
#
1년의 설계기간과 재검토, 1년의 지난했던 공사를 끝내고 모습을 드러내자 고맙게도 누군가는 주변에 울림을 주는 건물이라 했다. 소음과 먼지로 고생이 컸을 인근 주민분들도 투박하고 어색할지언정 저마다의 칭찬과 부러움을 전하고 갔다. 준공검사를 나왔던 한 관계자는 나와 통화연결이 되자마자 상기된 목소리로 “너무 잘 보았습니다, 한 해 동안 보았던 건축물 중 가장 좋았어요, 꼭 정리하여 잡지 같은 매체에서도 볼 수 있게 해주길 바랍니다.” 고 했다. 행정업무상 검사나온 이에게 듣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사였다.
전체에서부터 가구 디테일까지 이르렀던 계획과 설계에서도, 하나를 놓았을 때 줄줄이 잃기 마련인 난해하고 거칠었던 시공과정에서도 계획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지독스레 무엇하나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계획과 결과에서 모두 신축보다 몇 배 고된 과정이 수반되는 리노베이션이기 때문에 시공사와의 합을 끌어내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했다.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과 건축주(의뢰인)의 많은 신뢰와 감사를 받으며 무사히 작업을 완성시켰고, 마침내 현장을 떠나야 했을 때도 미련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말그대로 영혼을 쏟아부었던건지- 쉽게 정리 안되는 감정으로인해 이후 꽤나 진통을 앓아야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4월 어느 봄 날. 근처일로 갑작스럽게 도서관에 들르게 되었는데, 건축주(의뢰인) 선생님이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내 손을 덥석 잡으셨다.
“우리는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너무너무 좋아요. 설명하셨던 많은 것들을 이제야 하나씩 진짜 느끼고 알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남편은 요즘 땅에서 무슨 이파리만 나오면 서소장님 안오시냐고 그래요.”
지난 1월 초 겨울의 끝무렵_ 완공 당시 머리를 차갑게 식히는 열기가 있었다면, 이제 초록풀이 완전히 무성해졌다. 조용히 문을 연 도서관에 찾아왔던 사람들, 대화, 또 고양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우리가 ‘도서관 집’ 이라고도 불렀던 ‘콘크리트 도서관’은_ 사람들이 혼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자 한 건축주 선생님(건축주의 직업이 선생님이다)의 숨겨둔 오랜 꿈에서 시작했다. 대화의 초기 단계에서는 여러 혼재된 필요 프로그램들 가운데 비교적 작은 포션으로 수줍게 등장하였지만, 거듭되는 대화와 설계과정을 통해 건축물의 중심장소이자 공간으로 발전했다. 인상적인 기억 중 하나는, 이 프로그램이 도서실, 북카페 등 여러 다른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었는데, 공사 과정 중 골조가 정리되고 규모와 감각이 피부로 와닿는 시점이 왔을 때 내가 ‘도서관’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더니 건축주 부부도, 시공사 현장소장님과 관계자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기 시작한 일이다. "도서관" 이라는 프로그램은 지난 30년 세월을 간직한 채 단단하게 비워낸 이 새로운 덩어리의 주체이자 자체가 되었다. 함께 공유하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사적인 영역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투박한 담장과 건물의 관계에서, 비워낸 도서관 공간에서, 책상의 디테일에서도 녹아있다.
#
열정의 젊은 건축가와 일하는 주변도 고달픈 순간이 적지 않았겠지만, 작업이 실재하게 되기 전까지는 창작자만큼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설득과 설명과 공감과 확인의 반복과 연속에서 적막한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그 집요한 대화의 끝에 의도한 결과가 눈앞에 드러났을 때, 함께 일한 사람들 간에 '아- 이래서 그렇게까지 한거구나-' 같은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럴 때 가 있는가 하면, 이것은 결국엔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리노베이션이라는 근본적 제약이 있고, 거칠고 다이나믹한 현장의 모습이 오랜 계획과 설계의 이야기보다 지배적으로 잔상에 영향을 끼치는 와중에서_ 이 계획의 가치가 시간에 힘입어 발하길 바랐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매과정의 순간마다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셨었지만 내 손을 잡고 ‘이제야 여유를 가지고 하나씩 진짜 느낀다.’ 라는 선생님의 말이 와닿는다.
‘집요하게 비워낸 덩어리기 때문에 판떼기만 가져도 놓아도 아우라가 있을겁니다. 그저 제대로 비워내기 위한 길고 긴 작업이었으니까요-.’ 마지막 도서관 가구에 대한 논의 중에 한 말인데, (좀 과하게 들린다면 민망할 일이지만) 이 말에 웃음과 공감이 돌아왔다. 이것은 한순간도 공갈이라곤 없었던 진지함이자, 많은 과정을 버텨내게 한 단단한 주제이다. 외부도 내부도 그저 세월의 시간과 물리적 실체를 정리하고 비워내기 위해, 그리고 그 단단하게 거친 공기가 가능한 정교한 완성도에서 차분히 발할 수 있게 세밀한 부분까지 고민이 있었다.
얼마 전, 본 작업들에 대한 이야기 중 여전히 사그러지지 못한 내 고통이 보였는지, 비교적 나보다는 도서관 작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입장에 있는 허 가 말했다. 옛날에 잡지에선가 알바로 시자(ALVARO SIZA)가 그의 어떤 작업을 애착을 가지고 설명하는 걸 본 기억이 있다고, 임대 공동주택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그의 방대하고 걸출한 작업들 사이에서 유독 그 작업에 대해서는 각별한 의미를 담아 얘기하고 싶어하는 느낌이었다고. "프로젝트 특성상 보이는 화려함도 없고, 그 가치에 대한 주변 이해도가 완전 충분히는 따라오진 못했을거야. 그런데 시자에게 큰 건축적 의미였고, 발전 혹은 성장이었던 거였겠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거지- 너와 아지트한테 콘크리트 도서관이 그런 것처럼.”
#
도서관집은 30미터의 막다른 골목을 지나 다다른다. 이 좁고 긴 골목의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낭만과 호기심이, 누군가에게는 예측할 수 있는 어려움이 상기 될 것 같다. 대지가 내어 줄 수 있는 각이 제한적이라, 단단한 도서관집이 마당과 함께 앉은 모습이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다. 조용히 열려있는 대문을 따라 무심코 걸음을 옮길 때, 예상치 못하고 도서관집을 마주하는 그 점진적인 경험이 진짜다.
끝으로. 이 작은 2층 주택규모의 리노베이션 작업이 가지는 도시적 사회적 의미를 중요하게 짚어야하겠다. 위험한 상태로 도처에 존재하나 주목 받지 못하는 도시사각지대 노후부지의 근본적인 재생을 고민하고 당면 문제점들을 수면 위에서 직면한 것, 그리고 새로운 시도에 의한 해결을 강구한 건축가, 건축주, 시공자의 용기가 녹은 결과물이다. 변화한 모습과 장소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게 개방된다. 지난 30년과 새로운 30년을 위해 날서게 치열했던 건축작업의 시간들이 있었다. 주인도 손님도 없이 방치되었던 골목은 이제, ‘사적인 도서관’으로 누구나 걸음하는 길이 되었다.
시간을 간직한 볼륨과, 분명하도록 가다듬은 선과, 내`외부의 햇살과 그림자, 오랜 담장과 나 사이 적당한 거리 같은 것들이 잘 작동하여 방문자의 온전한 사색과 깨어날 시간을 돕길바란다. 그리고 그 곳의 편안함이 안락함보다는_ 조금은 낯선, 신선한 긴장감을 동반하길 바래본다.
.
.
.
.
(‘사적인 도서관’의 이름으로 함께 마지막 결정할 때까지_ 또 그럴 수 있을까 싶을만큼 건축주와의 대화가 길고 깊었던 작업이다. 아지트의 작업과 공감력을 늘 높게 사주었지만, 사실 참 완고한 열정적인 젊은 건축가들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기다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당신들의 개인적인 장소와 공간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내어주고자 하는 일 또한 그렇다. 이제 '사적인 도서관'은 선생님과 학생들과 함께 조용히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도서관집이 있기까지 함께한 건축적 서사와 시간들이 두 분과 가족들에게 아름답게 남아가길 바랍니다.)
PROJECT 2018.03 - 2020.01
EPLILOGUE 2020.10.00